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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양삼성산 - [산] 2024, 삼성산-관악산… ① 안양유원지 일대

by triplogs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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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삼성산,삼성산

[산] 2024, 삼성산 - 관락산…①안양유원지 일대 소재지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242-3 2024.10.17.목【당일】 날씨가 좋다고 예보되어 이번에도 먼 산에 갈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당일 아침에 구름이 진하고 먼 산행을 접었다.그러면, 근처의 산, 어디에 갑니까? 가까운 산정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이미 거의 수십 번 올랐기 때문이다. 삼성산 이다 수십번 갔던 가운데도, 그래도 마지막 등산이 낡은 산이기 때문이다.

 

삼성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오래된 안양유원지, 현 안양예술공원(안양예술공원) 를 거쳐야 한다. 안양예술공원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있는 공원으로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이름이다 안양역 북동 2km 지점에 있으며 관악산 629m )와 삼성산(삼성산 : 461m)의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천연수(안양천의 지류)를 이용하여 1950년대부터 이미 수영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는 이미 수영장을 비롯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추고 주변에서 안양 명물 중 하나인 포도와 딸기를 대량으로 공급받았으며, 여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 과 무질서하게 형성된 음식점에서 자연환경이 훼손되어 가혹한 시설과 우울한 환경에 의해 명맥만 유지해 왔다. 그 후 기반시설을 정비하면서 안양시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해 전망대, 1평 정보센터, 빈 다락방, 어눈 분수 등 유원지 곳곳에 국내외 유명 작가의 예술 작품 52점을 설치했다(두산 백과).

 

음, 뭐... 지금까지 안양예술공원 자체를 차분히 둘러본 적은 없었다. 다른 마을의 공원까지 손을 뻗는 것은 장발의 장소에는 아직 없다. 다만, 문화유산의 회답 차원에서, 여기는, 한층 더 등산과 관계없이 때때로 들렀습니다만… 안양 일대의 주요 문화 유산의 일부가 여기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방문해 들르는 것에 의지하지 않겠지만, 모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 오는 말이지만, 긴 머리는 여기 삼성산을 굉장히 좋아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지만… 유산이 많다. 여기의 안양예술공원 일대와 산중의 삼막사까지 포함하면… 연계산인 호암산(호랑산, 393m, 사적으로 지정된 호암산성과 호압사 소장 문화유산이 있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이곳은 등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의 회답 차원에서도 들러 실제로 몇번이나 그렇게 했다. - 호압사를 들른 후 내려 신림동의 오크나무(천연기념물, LINK)로 마침표를 잡는 것이... 장발장의 주요 답변 루트 중 하나다. 오늘은 산행 중심이며, 호암산은 생략하지만...어쨌든 안양예술공원 일대의 문화유산은 거론한다. 의 금중업 건축 박물관 이다.

 

글쎄, 기름유산업공장을 금중업(1922~1988)이라는 현저한 건축가가 설계했기 때문에 공장이 이전했을 때 건물을 파괴하는 대신 금중업을 기리는 박물관으로 했다… ㅎ는 이제 굳이 백과사전을 찾지 않아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나란히 라인 앞에 호안양 중초사지 당경지주 는 두 지주가 원래 모습대로 85㎝ 간격을 두고 동서에 서 있다.

 

현재 지주의 기단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지주 사이와 양 지주 밖에 하나씩 총 3장을 깔고 바닥석으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원래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은 어렵다. 기단 위에 당면을 세우는 지주는 지주 사이에 돌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직경 36㎝의 둥근 구멍을 열어 마련했다. 양 지주에 장식적인 장식이 없고, 상부를 둥글게 정돈한 자취가 있어, 시대가 낡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당면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공을 각각 지주의 상·중·하 3개소에 열었다. 동지주 상부가 눈을 뜨고 있지만 8·15 해방 후 근처 석수가 석재로 반출하기 위한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지주 뒤에 경기도 타입 문화유산 안양 나카마치 사지 3층 석탑 원래 당면 지주에서 동북으로 약 60m 떨어진 지점의 부처 중심 공간으로 추정되는 곳에 무너져 있었지만, 1960년에 유유산업이 들어가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기단은 단층으로 지대석은 판석형 석재를 여러 장 상당히 마련했다. 는 4장의 석재를 결구해, 우주는 좁고 낮게 모각했다. 를 결구했지만, 하부에 갑석의 높이보다 낮은 부연을 마련해, 상면에도 낮게 탑저를 두었다. 적으로 고려시대 경기도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한 석탑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탑신석은 1층만 남아 있지만, 기단부나 지붕석(옥개석, 석탑이나 돌 등 등 위에 지붕처럼 덮인 돌)의 폭에 비해 좁게 치석하여 양쪽 구석 에는 우주를 모각했다. 지붕석은 2층까지 남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비례가 뛰어나다. 가 줄어들면서 3단으로 치석했다. 돌규모가 지붕석과 기단에 비해 소형으로 지붕석낙수면의 형식화 등에서 보면 고려중기 이후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특이한 점은 이 석탑이... 1997년 전까지만 해도 보물급 문화재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강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에 드물지 않다. 강격 사유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멀리… 몸통이 1층만 남아 있는 등 완전한 상태가 아닌가? … 그런 상태로 더운 보물급을 올릴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예를 들면, 그 앞의 당시 지주는 각각이 새겨져 있어 기록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는 명백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물로서 인정되지만, 이 석탑은 무엇이라고 하는 것 없습니까? 등급 강격 사유도 ​​신경이 쓰이지만, 그 이상으로 보물급 지정 사유가 더 신경이 쓰이는… 그런 문화 유산이다.

 

공원 안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 공원 주차장 뒤에 산기슭으로 가면 기도원(가르멜 산 단식기도원) 옆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화유산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석수동 마에정(석수동 마애종) 만나요.

 

이 마애종은 중추사지 당면 지주(보물) 부근의 거대한 암면에 새겨진 범종으로 한국 유일의 마애종이다. 석수동 마에종은 종 자체의 형태로 고대 에 범종을 실제로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바위의 면에는 직사각형의 목틀에 체인으로 매달려 있는 종과 그 옆에 종을 칠 준비를 마친 듯이 어린 나무(종을 치는 나무의 막대)를 잡고,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승려 얕게 새겨져 있다. 종에는 2개의 윤곽이 있고, 뒷면에 나머지 2개를 암시하고, 당좌는 중앙에 원형, 양단에 반원형을 새겨 전체적으로 4개인 것을 암시한다 .

 

얼굴을 아래로 향한 용일두로 표현된 고리와 음통, 유두 9개가 있는 곽 등은 전형적인 통일신라범종의 특징이다. 의 항아리의 형태로 보이는 유려한 윤곽을 볼 수 없다 (국가유산청) 대신 마애형식으로 인물상(부처라도 보살인지 여부에 관계없이)는 일반적으로도 종은 정말로 처음 본다. 그런 파격적인 형식만 봐도 이 작품이 고려시대의 것이다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창조·창의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고려시대에 대해 깊이 알 필요가 있다.

 

마에종에서 조금 더 산에 들어가면 비싸게 보이는 카페 커플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먼저 잘 이야기가 나왔다. 안양사 물론, 지금의 위치는 원래의 위치(유유 산업공 장소)에서 쫓겨난 것이다.

 

안양사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산 27번지에 있는 태고종 소속의 사원이다. 900년(신라효공왕 4)에 후일 고려태조가 된 왕건이 이번 주(지금의 시흥)나 과주(지금의 과천) 등의 지역을 징벌하려고 삼성산을 지나 산 정상 구름이 5개의 빛을 띠고 있다고 보고 신기하게 생각해 라고 사람을 시켜서 조심했다고 한다 이것에 구름 아래에서 노우사토와는 노스님을 만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왕건의 뜻과 같기 때문에 지금의 장소에 안양사를 창건 안양시의 명칭도 이 절에서 유래했다.

 

대인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옛 절터에 대웅전, 명가전, 미륵상, 삼성각, 심검당 등을 건립했다. 면 2 사이의 팔작 지붕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귀부(경기도류형 문화유산)와 부도가 정착하고 있다(두산백과).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옛 축제는 숭유 억제 등의 사회적 흐름에 의해 17세기 이후에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의 사원에서 옛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안양사지는 신라시대 중초사와 고려시대 안양사, 그리고 현대의 1세대 건축가 김준프가 설계한 산업유산이 겹친 공간적 시계열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안양사지는 지명의 성립과 지역의 변화, 발전 등 문화적 정체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복합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와 의미 부여를하면서, 현재의 절을 경기도 기념비 안양사(안양사지) 라는 명칭으로 문화유산 지정했다.

 

아울러 경내에 또 하나의 지정문화유산이 또 하나 있다. 대웅전 앞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귀부인과 무술 가운데, 귀부가 그것이다.

 

경기도 형문화유산 안양사 귀부는 현재 안양사 대웅전 앞에 위치한 거북이 모양의 비석 지주이다. 안양사의 뒷산에 있던 것을 이전했다고 전한다. 비신(비신; 돌의 몸통으로 글자를 새는 곳)과 의자(나선목; 석석의 두석으로 용의 형상을 조각)은 없어져, 귀부(陜趺; 거북이 형태의 비석지석 )만 있다.

 

안양사의 귀부는 완전한 용두에 바닥에 쏟아진 거북이의 몸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였고, 뒷목은 등에 붙어 거의 표현되지 않았다. 얹어준다 등에는 육각형의 벌집 모양의 귀갑문을 이중으로 새겨, 등에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했다. 을 조각했다. 비신이 없어져 조성연대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현실적인 세부 묘사, 모양의 도식화 등 전체적인 조각 수법으로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산행전의 회답이 끝났다.

 

앞으로는 - 삼막사에 당당하게 될 때까지 - 산행에 집중할 때이다. 그리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10:55, 삼성산으로 향했다.

 

①안양유원지 일대 ② 삼성산 : 삼막사까지 ③ 삼성산 : 삼막사 후 ④관악산:학암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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